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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시신을 담았던 관
1901년 5월 김대건 신부의 시신을 미리내에서 용산의 예수성심신학교로 이장하면서 사용했던 관. 1994년 2월 24일까지 김대건 신부의 유래를 담아 보관하는데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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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봉인
1901년 김대건 신부의 유해를 이장하면서 유골을 싸고 유해의 부분 명칭을 붙인 후 봉인을 찍어 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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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묘비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용산으로 옮겨진 후 약 8개월 후인 1902년 8월 23일에 제8대 조선 교구장인 뮈텔주교와 신학교 교장인 기낭 신부가 성당에 모셔진 성인의 유해를 더 공고히 하는 작업을 한 후 영구적으로 봉인하기 위해 유해 위에 덮었던 대리석판이다. 윗쪽의 PX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아래의 숫자는 김대건 신부의 생몰 연도이다. 그리고 AK는 ‘안드레아 김대건’의 라틴어 첫단어만을 적어 놓은 것이다. 이 대리석판은 1994년 2월 24일 새로운 형태의 것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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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유해 안치 석관
서울 포교 성 베네딕도 수녀회 강 마티아 수녀에 의해 설계․제작된 석관으로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성당의 제대 우측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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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교황께 올리는 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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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초상 (장발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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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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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석상
절두산 성지에 세워져 있던 김대건 신부 석상으로 신학교로 이전하였다. 1973. 5. 13일 성소주일 야외미사 후에 김수환 추기경 집전으로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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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부조 (조숙의 作)
가톨릭대학교 개교 150주년 및 성 김대건 신부 사제서품 1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도에 제작 및 축성되었다. 재료는 Bronze 원본 크기는 105×158cm의 부조이다. 작품 속에서 김대건 신부는 참수형을 당한 자신의 십자가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현대 한국 교회에서 많은 사제를 배출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김 신부의 희생 덕분이라는 것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고 싶었던 작가의 의도이다. 김 신부가 입고 있는 옷의 주름은 우리들이 걷고 있는 신앙의 발걸음에 함께하시는 살아계신 성령을 뒤 벽의 형틀 이미지는 죽음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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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Pro Corea documenta (朝膳聖教史料)
한국 천주교회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프랑스의 각 도서관과 한국 내의 천주교회사 관련 자료를 수집 연구하던 파리외방전교회의 Leon Pichon 신부의 저서로 1938년에 출판되었다. 성 김대건 신부의 서한 16통과 김대건 신부의 연보 · 전기 등을 수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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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首先鐸德 金大建
1942년 명동본당에서 출판된 김대건 신부의 전기로 저자는 유영근 신부이고 Larribeau 주교가 감준하였다. 발행 당시 일제의 탄압으로 일본인 구로까와(黑川 米尾) 신부를 편집 겸 발행인으로 해서 발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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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pistolae Beati Andreae Kim
김대건 신부의 편지 모음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