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모든 전례 용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작은 성서에 유일하게 언급되어 있는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당신들도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였으며(마르코 10:39), 최후의 만찬 이야기에서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 계약의 피를 마셔라”고 한 포도주를 담은 잔이 나온다(마르코 14:23-24, 루가 22:17-18, Ⅰ고린도 11:25) 또 게쎄마니에서 예수는 “이 잔을 저에게서 거두어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는데(루가 22:41, 마태 26:42, 마르코 14:36), 이 모든 성서구절들이 하나로 모아져 현재 성찬 전례에서 성변화를 위한 기도로 사용되고 있다. 전례용 성작은 고대의 술잔에서 변형, 발전되었다. 초기 교회 때 사용된 성작은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카타콤바에 그 당시의 성작이 묘사되어 있으며, 테르툴리아노의 작품에도 성작을 의미하는 라틴어 ‘calix’가 언급되어 있다. 현재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성작은 500년경의 것으로 예술적 문양이 뛰어난 비잔틴식의 ‘안티오키아 은 성작’(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이다. 6세기 경에는 넓은 잔과 그것을 받치는 깔대기 모양의 받침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로 구성된 성작의 고전적인 형태가 정착되었다, 또 7~8세기 이후에는 마실 때 편리하도록 주둥이가 달린 커다란 성작들이 등장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신자들이 성체성사 성작에 직접 입술을 대고 성혈을 받아 모실 때 흘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12세는 큰 잔 형태의 성작이 나타나고 13세기부터는 성작에 부착된 손잡이가 점차 사라지면서 중간 마디의 대 부분이 손잡이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14~15세기의 성작은 고딕식의 가늘고 긴 형태로, 깔대기 모양의 잔과 고딕식의 꽃잎 문양이 양각되어 있는 받침 부분과 십자가가 붙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 후 17~18세기 즉 바로크 시대에는 컵 모양의 잔부분과 금은 세공이나 상아를 박아 넣는 세공법을 이용해 장식한 대부분 그리고 무겁고 튼튼한 받침부분으로 구성된 것이 특징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작은 고대의 성작처럼 크고 장식 없이 단순한 술잔 모양으로 제작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잔 부분이 강조되면서 중간 마디 부분은 보다 깨끗하고 조화로운 선을 유지하기 위해 사라지는 추세이다. 재료를 살펴보면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나무로 성작을 만들어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유리로 된 것도 사용하였다. 초기 교회와 중세기 전반에 걸쳐 성작은 유리, 나무, 구리, 청동, 수정, 마노 등 여러 가지 재질로 제작되었으나 콘스탄틴 대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금이나 은으로 제작하기 시작하였다. 1310년 트리어 교회회의에서 모든 교회는 적어도 은으로 된 성작과 성반에 도금을 하여 사용하도록 규정하였으나 1969년 이후부터는 재정이 어려운 경우에 다른 재료를 허용하고 잔의 안쪽만 도금하도록 지시를 내렸다. |
일반적 형태 |
성작은 윗부분의 잔과 중간 마디가 있는 대, 그리고 받침 이렇게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금, 은, 구리, 주석, 청동 등으로 제작할 수 있는데 잔의 안쪽은 부식을 방지하기 위해 도금을 한다. 쉽게 깨어지거나 수분을 흡수하거나 썩는 재료로 만들어서는 안 되며 대는 단단하고 품위 있는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또한 성작은 사용 전에 반드시 축성하여야 한다.
본 소장품은 '최후의 만찬 성작'을 모방해서 제작한 것이다. 잔부분과 받침 부분은 플라스틱, 손잡이와 대 부분은 복합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잔과 받침 부분을 연결하는 대 부분에 둥근 마디가 들어가 있으며, 타원형인 받침의 윗면에 인조 진주와 보석이 박힌 금속대를 둘러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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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신)』,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교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