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봉헌 때에 사용하는 초라든지 망자를 위해서 쓰이는 초처럼 초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긴 역사를 지니고 있다. 금세기 초에 제대 위에 초를 놓아두기 시작했고 비록 빛을 발하는 기능이 약하고 그것이 더 이상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으나 계속 그 곳에 두게 되었다. 초는 대축일이 거행되는 시기라든지, 전례의식을 거행하는 데 있어 본질적인 역할을 한다. 부활절, 예수성탄, 세례, 그리고 첫 영성체 때 그러하다. 이것으로 그리스도가 세상의 빛이며 그리스도인들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등불이자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촛대에는 가동식(可動式)과 고정식이 있다. 서양에서는 밀랍이 일찍부터 이집트인 ?그리스인에 알려져 BC 3세기에는 초가 있었다고 하므로 촛대도 그리스시대 말기에 발명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로마시대에도 수는 적었으나 촛대가 있었음이 확실하며, 황제 티투스의 개선문에 부조된 7개의 촛대나 폼페이의 유물 등에서 당시의 촛대를 알 수 있다. 구조는 지주(支柱) 끝에 몇 개의 부리 모양의 가지가 있는 촛대, 잔대(盞臺) 중앙에 못이 있는 촛대, 초를 그대로 끼울 수 있는 통형(筒形)의 촛대 외에, 나부(裸婦)나 장사를 본뜬 장식적인 촛대도 있는데, 모두 청동으로 되어 있다. 초를 많이 사용한 것은 중세 촛대를 사용하였다. 르네상스 시기에는 초를 여러 개 켜는 다등가(多燈架)도 있었고, 대리석제 대형 촛대도 있었다. 17∼18세기부터 궁정 등에서는 은으로 만든 촛대를 사용하였으나 도자기나 청동제의 촛대도 제작되어, 실내장식의 역할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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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 형태 |
높이 46.5cm, 받침지름 15cm
본 소장품은 길이가 긴 금동제 촛대이다. 초받침, 손잡이, 받침대로 구성되어 있다. 초받침은 가운데가 오목한 접시 형태로 중앙에 원통형 구멍이 있어 초를 끼우도록 되어 있으며, 손잡이는 일자형 원기둥으로 상, 중, 하의 세곳에 마디가 표현되어 있고 중앙에 길쭉한 구멍이 뚫려 있다. 받침은 윗부분이 융기된 화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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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교의 상징들』, 김종익, 카톨릭출판사,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