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
성세현시(聖體顯示), 성체강복(聖體降福), 성체행렬(聖體行列) 등에 성체를 보여주는데 쓰이는 제구(祭具). |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성광은 초대 교회 때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중세 말에 이르러 신자들 사이에서 성체 공경 신심이 커짐에 따라 시작된 성체 현시에서 유래하게 되었다. 교황 우르바노 4세(1261~1264)가 1264년에 ‘그리스도의 성체 대축일’(지금의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을 제정한 후 ‘성체현존’에 대한 신심이 고무되었는데, 이것이 성광이 등장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처음에 성광은 성당 안에서 성체를 옮기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러한 예로는 ‘주의 수난 성지 주일’ 행렬 때 사제가 성체가 들어있는 궤를 운반한 실례를 들 수 있다. 그리고 1287년에는 성합(聖盒, ciborium)과 같은 것을 이용해서 성체를 현시하여 공경 예절을 하였으며, 14세기부터는 스페인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성체 대축일’에 성체 행렬과 현시를 하는 것이 관례화되었다. 미사 외의 성체 공경 예식은 이렇게 중세 후기에 널리 확산되었으며, 성광은 프랑스와 독일에서 최초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성체 현시를 위해 만들어진 성광을 독일에서는 ‘성체현시대’(monstrantia)라고 하였고, 이탈리아에서는 ‘성체감실’(tabernaculum), 스페인에서는 ‘성체갑’(custodia)이라고 불렀다. 14세기 후반부터 성광의 사용이 교회 내에서 점차 확산되면서 15~16세기에는 그 수효가 크게 늘어났고, 그 모양도 성합의 형태에서 차츰 변화되어 갔다. 특히 17세기에는 모든 교회에서 성광을 사용하도록 요청하는 교회 회의가 여러 번 개최되기도 하였다. 이 때 반드시 일정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들라는 제한 규정이 선포되지는 않았으나, 성체를 공경하는 관점에서 성체가 직접 닿는 부분은 반드시 순금으로 하고 나머지 부분은 은이나 구리에 금박을 입히도록 하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는 주석을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목재 사용은 금지하였다. |
일반적 형태 |
보통 금이나 은으로 만들거나 도금한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여러 가지 형태와 장식이 있지만 가장 일반적인 것은 탑형이나 원형으로, 가운데 부분에 성체를 두는 투명한 반월형(半月形)의 성체용기(聖體容器, lunette)가 있어 물결 모양이나 직선 광선이 방사된다.
(높이 : 40cm, 후광 폭 : 14cm, 받침대 너비 : 12.5cm)
금속으로 제작한 황금색 성광으로 모방신부, 샤스땅신부, 엥베르주교의 유해가 각각 들어 있다. 둥근 받침부분과 고딕식 건물의 정면을 형상화한 듯한 몸체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유해를 넣는 화판형 입구 양옆에는 성인으로 보이는 인물상이 양각으로 장식되어 있으며 받침과 몸체에 공문(孔紋)이 있다.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다.
|
교회사적의의 |
|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
비고 |
|
소장처 주소 및 정보 |
110-758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90-1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신관
예약 관람 TEL (02)740-970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