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
미사 중에 성작, 성반, 성합을 올려놓는 사방 50cm 이내의 흰색 아마포로 만들어진 전례 용구. |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성체포는 성작 덮개와 함께 초기의 긴 제대포에서 유래되었다. 제대포와 성체포가 구분 없이 사용된 4세기에는 제대 전체를 덮을 만큼 큰 것이었다. 카롤링거 왕조 시대에는 몇 개의 제대포가 사용되었는데, 세 개의 아마포 제대포와 성작까지 덮는 용도의 한개의 성체포(palla corporale)가 있었다. 이 성체포는 제대위에 놓인 성작과 성체를 덮던 것이었다. 1000년경 이후부터 성체포는 제대포와 구분하여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며, 크기도 점차 줄어 중세 말부터는 오늘날의 성체포와 비슷한 크기가 되었다. 또 성작을 덮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성체포는 두 번 접어 성작 덮개로 사용되다가 지금의 성작 덮개가 따로 구분되자, 17세기부터는 현재 용도의 성체포로 정착되었다. 그 후에도 많은 나라에서는 두개의 성체포를 사용했으며, 가르투지오회에서는 아직도 성작을 덮는 용도로 큰 성체포를 사용하는 관습이 남아있다.
중세 때에는 성체포를 불속에 던지면 불을 끌 수 있다는 대중 신심이 있었다. 그러나 1022년 젤리겐슈타트(Seligenstadt) 교회 회의에서는 사제들이 성체포로 불을 끄는 이러한 신심행위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금지시켰다. 또한 병 특히 눈병을 낫게 한다는 신심이 신자들 사이에 만연하기도 하였는데, 사제가 입당할 때나 퇴장할 때 성체포를 들고 신자들을 향해 부채질을 하기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미사 후에 헌금을 내고 성체포를 얼굴에 대기도 하였다.
동방 교회에서는 제대 위를 덮던 ‘에일레톤’(ειλητον)이라는 큰 천이 서방 교회의 성체포와 유사한 용도로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예수가 매장될 때 머리 주변에 펼쳤던 천을 상징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동방 교회에서는 이 ‘에일레톤’과 ‘안티멘시움’(antimensium)이라는 성체포가 함께 사용되고 있다. ‘안티멘시움’은 아마포로 제작되고 예수의 수난과 매장을 그린 장식이나 순교자의 유해를 담고 있으며, 9세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다.
|
일반적 형태 |
성체포는 성찬 전례 중에 떨어질지도 모를 성체조각들을 쉽게 모으기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세 번 접을 경우 천의 중앙이나 아랫부분의 중앙에 수놓은 십자가가 나오도록 되어 있다. 성체포는 질이 좋은 천을 이용하여 아름답고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빳빳함을 계속 유지하도록 풀을 먹인다.
본 수장품은 흰색의 면직물로 제작되었으며, 사각형의 형태를 갖고 있다. 전체면을 9등분했을 때 하단 중앙에 오는 면에 그리스식 십자가의 응용형을 흰실로 수놓았다.
|
교회사적의의 |
|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신)』,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교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
비고 |
|
소장처 주소 및 정보 |
110-758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90-1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신관
예약 관람 TEL (02)740-970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