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6. 9 | 순교 후 14일 만에 모래사장에 가매장되어 있는 시신을, 이민식(1829~1921)이 동료들과 함께 파내어, 밤으로만 산길을 걸어 1주일 만에 150리 떨어진 자신의 고향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미산리로 모셔다 10월 26일 자기 선산에 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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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 5. 20 | 뮈텔 민(閔) 주교의 명으로 무덤 발굴 후 유골을 전부 추려 모아, 본당 신부인 강도영 신부방에 안치 |
1901. 5. 23 | 미리내를 출발하여 용산 신학교에 도착 |
1901. 6. 23 | 용산 신학교 성당 제대 밑에 유해 안치 |
1950. 6 | 6·25 사변이 일어나자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암매장 |
1950. 9. 28 | 경남 밀양으로 피난가 있던 소신학교로 유해 이동 |
1953 | 휴전이 성립되자, 수복하여 혜화동 소신학교(성신중고) 성당으로 옮김 머리부분만 피난하고 나머지는 용산에 모셔둠 |
1960. 7. 5 | 굵은 뼈들은 현 대신학교의 성당으로 옮겨 모시고 하악골은 미리내 경당으로 치아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으로 분리 안치 |
1994. 2. 17 | 유해를 보관해온 목관의 부식이 심해짐으로 가톨릭 의대 해부학 교수팀이 소독 후 강우일 주교의 입회하에 김수환 추기경님의 봉인을 마친 후 2월 21일 30×50×50cm 크기의 납관에 밀봉 |
1994. 2. 24 | 대신학교 대성당의 석관에 안치 |
(출처 :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유해 현황 : 자료집 / 이기명 엮음,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