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장구분 | 전례박물관 | 정리번호 | 030105A305 |
---|
부문 | 유물 | 교구/소속 | 서울대교구 |
---|---|---|---|
관리/소장처 | 가톨릭 문화시설 | 종별 | 제구류 |
명칭(한글) | 딱딱이(성주간 전례용) | 명칭(영문) | |
---|---|---|---|
장르 | 제구류 | 등록번호 | 89 |
국적 | 대한민국 | 시대 | 광복이후~1980년대 |
용도 | 기능 | ||
수량1 | 1 05 | 재질1 | 나무 |
수량2 | 재질2 | ||
수량3 | 재질3 |
크기 | 높이 (세로) | (cm) | 길이 (가로) |
(cm) | 너비 (폭) |
32 (cm) |
---|---|---|---|---|---|---|
깊이 | (cm) | 지름 | (cm) | 기타 | (cm) |
문화재지정 | 구분 | 호수 | 일자 |
---|---|---|---|
특징 | 나무로 제작/ 작은 빨래 방망이 모양/ 성주간 예절시 금속종 대신 사용하는 전례용구/ |
---|
정의 | 미사 도중 신도들의 주의를 환기 시키기 위해 치는 종. |
---|---|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
서양에서는 방울과 종의 구별이 없이 양자를 벨이라 한다. 세계 최고(最古)의 벨은 바빌론에서 발굴된 약 3000년 전의 것이다. 모양은 작은 컵을 거꾸로 한 것 같으며 철사로 매달게 되어 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군마(軍馬)나 전차에 벨을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종을 사용하게 된 것은 로마의 황제들이 그리스도교를 박해하지 않게 되면서부터이다. 영국에서는 750년에 교회에서 일정한 시간에 종을 울리는 규칙이 생겼다. 초기의 종은 소형이었으나, 12∼13세기부터는 이탈리아에서 대형의 종이 나타났다. 종탑이 생긴 것은 8세기 말부터 9세기 무렵이다. 중세에는 이민족의 침입 ?전쟁 ?해적에 의한 도시소각(都市燒却) 등 이변을 알리는 데 종이 쓰였고, 교회의 주종(主鐘)의 관리권을 시민이 가진 도시도 있었다. 서양에서 널리 알려진 종은 소등(消燈)의 종이다. 영국에서 이 소등의 종을 치도록 규정한 것은 11세기 윌리엄 1세(征服王)의 시대이다. 이 풍습은 유럽 각국에도 전파되어 후에는 화재예방만이 아니라 8∼9시에 점포를 닫는 신호가 되어, 19세기까지 이 종을 쳤다. 로마 가톨릭교와 영국의 국교에서 교회에 종을 내릴 때, 세례식(洗禮式)을 올렸다. 종의 안쪽과 바깥쪽에 성유(聖油)를 부어 명명(命名)하고, 그 종이 바람이나 일광의 해를 입지 않고, 공기를 맑게 하고, 종에 새긴 십자가의 힘에 의해 악령을 물리칠 것을 기원하였다. |
일반적 형태 | 본 소장품은 나무로 제작되었다. 작은 빨래 방망이 모양으로 2개가 한 세트를 이룬다. 두개를 서로 부딪쳐 소리를 내는데, 성주간 예절시 금속종 대신 사용한다. |
교회사적의의 | |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9.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교의 상징들』, 김종익, 카톨릭출판사, 2001. |
비고 | |
소장처 주소 및 정보 |
110-758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90-1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신관 예약 관람 TEL (02)740-9707~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