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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김대건 안드레아신부 초상 (장발 作)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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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구분 전례박물관 정리번호 030105A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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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 유물 교구/소속 서울대교구
관리/소장처 가톨릭 문화시설 종별 제구류

필수항목

필수항목
명칭(한글) 미사 경판 명칭(영문) missale(라) missal(영)
장르 제구류 등록번호 691
국적 대한민국 시대 1960년대
용도 기능
수량1 2 01 재질1 나무
수량2 재질2
수량3 재질3
필수항목
크기 높이
(세로)
28.5 29 (cm) 길이
(가로)
(cm) 너비
(폭)
20.3 41.7 (cm)
깊이 (cm) 지름 (cm) 기타 두께:1.6 (cm)
문화재지정
문화재지정 구분 호수 일자
     
특징
특징 직사각형의 목판 /
제단 위에 두고 사제가 사용하는 기도경문 /
미사시작과 성체축성 기도경문 /
테두리는 목판의 나무결을 살리고 가운데 백색 배경에 홍색과 적색의 글자로 기도문을 인쇄 /
성체축성 기도경판 중앙 하단에 흑백 성화(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상)

세부항목

세부항목
정의 미사성제를 봉헌할 때 사용하는 경문(經文)을 수록한 목판.
유래 및
발달과정/역사
모든 미사에 공통되는 통상문(通常文)과 전례 시기나 축일에 따라 변하는 고유문(固有文)이 전례주년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미사경본이 처음 편찬된 것은 전례서(Sacramentary), 봉독집(Lectionary) 등에 산재해 있는 내용을 집대성한 통합 미사경본(Plenary missal)이며 교황 인노첸시오 3세가 이를 기초로 '성청(聖聽)미사경본'을 내었다. 이를 개정한 로마 미사경본(1474)과 부르차르드(John Burchard)의 미사경본(1502)을 다시 개정한 것이 교황 비오 5세의 '로마 미사경본(1570)'이다. 현재 사용중인 미사경본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개정된 것이며 교황 바오로 6세가 '미사전문(典文)'까지도(1967. 5. 4) 모국어 사용을 허가함으로써 완전한 모국어 미사경본이 되었다.
일반적 형태 (미사시작 기도경문 : 세로형-20.3*28.5*1.6cm)
(성체축성 기도경문 : 가로형-41.7*29*1.6cm)
미사시작 기도경문과 성체축성 기도경문을 각각 목판에 컬러로 인쇄한 것으로 제단 위에 두고 사제가 사용할 수 있다. 테두리는 목판의 나무결을 살리고 가운데 백색 배경에 홍색과 적색의 글자로 기도문을 인쇄하였다. 성체축성 기도경판에는 중앙 하단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상이 들어 있다.
교회사적의의
참고자료 『한국가톨릭대사전』,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85.
『한국가톨릭용어큰사전』, 허종진, 한국그리스도교언어연구소, 1994.
『그리스도의 상징들』, 김종익, 가톨릭출판사, 2001.
『교리 전례 용어 해설』, 이기정, 가톨릭출판사, 1999
비고 미사(초기 원시교회에서는 '빵나눔', 2-3세기에는 '감사기도, 감사', 4세기에는 '제사, 봉헌, 성무, 집회' 등으로 불려왔다)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Missa'에서 유래됐으며, 중국어 [彌사]나 한국어로 그 발음을 딴 것이다. 이 용어는 5세기부터 서방 라틴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안에 물려 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제사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Missa'라는 라틴어는 '보내다', '떠나 보내다', '파견하다'의 뜻을 가진 'Mittere' 동사에서 파생되었다. 본래 'Missa'라는 용어는 교회안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 로마시대 일반 사회에서 통용되던 것이다. 즉 'Ite, Missa est'라는 관용어는 법정에서 '재판이 끝났다'는 것을 선포한다든지 혹은 황제나 제후, 고관대작들을 알현한 뒤 '알현이 끝났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었다. 이것을 교회가 받아들여 거룩한 집회인 미사성제(聖祭)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신자들이 함께 모이는 집회의 대당적(對當的)인 뜻을 표시하는 모임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하겠다. 또한 Missa는 '파견한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즉 신자들은 미사성제에 참여하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무한한 구원의 은총에 감싸였으므로 이제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과 구원의 희소식을 모든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파견된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미사는 가톨릭 교회인 천주교의 거룩한 제사다.
미사는 성찬의 잔치다. 봉헌된 제물을 제사에 참여한 자들이 함께 나누어 먹는 잔치의 행위는, 제물을 받으시는 하느님과 제물을 바치는 자들과의 일치를 이루게 하며, '같은 빵과 같은 잔'을 즉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을 받아 모시는 모든 이로 하여금 성신의 힘으로 하나가 되게 한다(미사 성찬기도문 참조). 성찬에 참여한 자들이 제물을 함께 나누어 먹음으로써 하느님과 인간과의 주고 받는 통교가 이루어진다. 즉 하느님은 인간에게 구원과 진리와 생명을 주시고 급기야는 당신 자신을 주시며, 인간은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성찬례가 일반식사와 분리되어 거행될 때, 이 성찬례 전레 성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마음의 타당한 준비를 갖추고자 성서봉독을 결부시켰다. 그 후 그리스도교의 신앙 전파로 여러 민족이 그리스도교 귀화하고 따라서 각 민족과 지역의 풍습과 전통이 다르므로 미사의 본질적 요소를 그대로 보존하면서도 변화가 가능한 외적 요소와 기도들이 첨가되고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150년경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미사의 구성요소가 된 뒤 오늘날과 같은 미사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7세기 중엽이라고 할 수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년)의 전례쇄신 의도에 따라 새로 정비된 성 비오 5세의 통일 미사경본이 1570년에 출간되었다. 이 미사경본으로써 로마 라틴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쇄신에 의한 미사경본이 출간 될 때(1969년)까지 400년간 통일적이며 고정된 미사성제를 거행하여 왔다. 16세기 말엽에 동양에 천주교가 전래될 때 이 고정화된 통일 미사경본을 사용해야만 했고, 따라서 18세기 말엽 중국을 통해 한국에 전래된 천주교회도 이 미사경본에 따라 미사성제를 거행하였다. 당시에는 토착화(土着化)의 가능성이 주어지지 않았을 뿐 아니라, 전례용어로서 라틴어를 고수함으로써 신자들이 미사성제의 내용을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 천주교회는 1935년 덕원(德源)에서 미사경본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대본으로 사용되게 됨으로써 신자들의 미사참여에 있어 큰 도움을 주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뒤 전례쇄신의 일환으로 개정된 바오로 6세의 미사경본에는 성찬기도 3개가 새로 첨가되었을 뿐 아니라, 모국어 사용을 허용함으로써 모든 신자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 복음과 구원 진리를 선교적 선포의 강조로 성서봉독의 폭을 대폭 늘려 3년 주기로 봉독하게 하였고, 신자들의 적극적 참여를 위하여 미사 중의 역할을 분담케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을 기념하며 그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성찬의 잔치를 베푸는 미사성제는 가톨릭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중심이며 원동력이다.
소장처 주소
및 정보
110-758 서울특별시 종로구 혜화동 90-1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성신관
예약 관람 TEL (02)740-9707~8

유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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